코리 텐 붐의 어린 시절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은 1892년 4월 15일, 네덜란드 하를렘(Haarlem)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본명은 코넬리아 아놀다 요한나 텐 붐(Cornelia Arnolda Johanna ten Boom)입니다.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으며, 아버지 캐스퍼 텐 붐(Casper ten Boom)은 시계 제조자였고, 어머니 코넬리아(네야) 요한나 아노르 테일러(Cornelia Johanna Arnolda Luitingh)는 가정주부였습니다.
코리 텐 붐의 가정은 개혁교회 전통을 따르는 신앙심 깊은 집안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신앙 교육에 열심이었고, 코리와 그녀의 형제자매들은 어릴 때부터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코리의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사랑과 봉사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이는 코리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코리는 하를렘에서 자라며, 가족의 시계 가게에서 일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시계 제작과 수리에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코리도 자연스럽게 그 기술을 습득하게 되었습니다. 코리는 시계 제작을 통해 가족 사업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정밀함과 인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코리의 어린 시절은 가족과 함께 신앙 생활을 하는 가운데, 다른 사람들을 돕고 섬기는 삶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코리와 그녀의 형제자매들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참여했으며, 이는 그녀가 평생 동안 실천한 신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코리 텐 붐의 사역
나치 점령기와 저항 운동
코리 텐 붐의 삶은 1940년대에 큰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 나치는 네덜란드를 점령하였고, 유대인에 대한 박해와 학살이 시작되었습니다. 텐 붐 가족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마음으로 유대인들을 돕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집을 피난처로 제공하여, 나치로부터 도망치는 유대인들을 숨겨주고 보호했습니다.
텐 붐 가정의 집은 하를렘의 바르트레르스테라트(Barteljorisstraat)에 위치한 시계 가게 위층에 있었으며, 이 집은 "은신처"로 알려졌습니다. 그들은 집 안에 비밀 방을 만들고, 이를 통해 유대인과 저항 운동가들을 안전하게 숨길 수 있었습니다. 코리와 그녀의 가족은 가짜 신분증과 식량 배급표를 구해주며, 수백 명의 사람들을 구출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1944년 2월, 텐 붐 가족의 활동은 비밀 경찰인 게슈타포에게 발각되었습니다. 코리와 그녀의 가족은 체포되어 수감되었습니다. 코리와 그녀의 언니 벳시(Betsie)는 독일의 라벤스브뤼크(Ravensbrück) 강제 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이곳에서 그들은 비인간적인 처우와 고난을 겪었지만, 신앙의 힘으로 서로를 격려하며 지냈습니다.
수용소 생활과 신앙의 증거
라벤스브뤼크 수용소에서 코리와 벳시는 다른 여성 죄수들을 위로하고, 성경 공부를 통해 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벳시는 수용소 생활 중에도 끝까지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였으며, 코리 역시 이를 통해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벳시는 수용소에서 사망하였으나, 그녀의 믿음과 용기는 코리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코리는 1944년 12월, 행정 실수로 풀려나게 되었고, 전쟁이 끝난 후 네덜란드로 돌아왔습니다. 그녀는 수용소에서의 경험과 벳시의 유산을 바탕으로,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하는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전후 사역과 용서의 메시지
전쟁이 끝난 후, 코리는 자신의 경험을 기록한 책 "피난처(The Hiding Place)"를 출판하였습니다.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피난처"는 코리 텐 붐의 용기와 믿음, 그리고 용서의 메시지를 전하는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코리는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강연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용서와 화해의 중요성을 설파했습니다. 그녀는 전쟁으로 상처받은 이들과 피해자들에게 용서와 사랑을 전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코리의 메시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으며, 그녀의 사역은 전후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코리는 또한 다양한 사회 봉사 활동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그녀는 전쟁 고아를 돌보는 일에 헌신하였고, 전후 재건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코리는 평생 동안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마지막 여정과 유산
코리 텐 붐은 1983년 4월 15일, 자신의 91번째 생일에 캘리포니아주 플라센티아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삶과 사역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그녀의 용기와 믿음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코리의 메시지는 용서와 화해,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녀의 이야기는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코리 텐 붐의 생애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실천하는 삶의 본보기로서, 인류 역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그녀의 용기와 헌신은 전쟁과 박해 속에서도 희망과 사랑을 잃지 않는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보여줍니다. 코리 텐 붐의 유산은 오늘날에도 계속 이어지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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